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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Medium/Netflix

10대 청소년들의 어두운 사각지대, 인간수업(Extracurricular)

❇︎전반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018년, Netflix 오리지널로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우울감을 함께 선사했던 미국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기억하시나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의 포스터

 

한 학생이 자살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13가지 이유를 13개의 테이프로 세상에 남기고 나서 나타나는 혼란과 가해자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죠.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꼼꼼히 보지 못한 드라마입니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왕따', '학교 폭력', '성폭행' 등 어두운 주제들을 다루며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함께 고발하고 있는데요, 

 

이 드라마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으로 한국에서도 Netflix 오리지널로  '인간수업(Extracurricular)'이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2020.4.29 개봉한 인간수업(Extracurricular)의 포스터

 

성숙하지 못한 이들의 성숙한 범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의미심장한(?) 제한으로 뭔가 쾌활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한 드라마는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스카이캐슬, 이태원 클래스에서 순진한 캐릭터를 이어온 김정희(주인공 오지수 역)님 지독한 악역 연기 변화도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죠. 그 외에는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습니다.

 

<주요 청소년 등장인물들>

 

총 1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즌1이라는 꼬리를 달아오기도 했고 마지막 결말을 보면 시즌2가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위의 포스터에서 4명은 같은 반 학생으로, 그중에서 두 번째 김정희(지수 역), 과 세 번째 박주현(규리 역)님이 핵심 인물이자 주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지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인간 수업은 평범하고 성실한 고등학생으로 1등급을 절대 놓치지 않는 최우수 학생인 '지수'가  벌이고 있는 불법 사업과, 여기서 계속 꼬여만가는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란의 끝으로 치닫게 되는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지수는 가난하고 어려운 과거에서 벗어나 단지 평범한 삶 하나를 위해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모을 수 있는 불법 사업을 하게 되는데요,  흥미롭게도 그 목표를 향해갈수록 깊은 구렁으로 빠집니다. 이것은 마냥 지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주변인들이 그 요인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왕따', '학교 폭력'의 문제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유도하지 않고, 이 사회적인 문제를 도덕적으로 공감하지 않은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어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콕 집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지수가 한 사업은 성매매 종사자들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중개 및 보험 서비스였는데, 시작부터 바른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죠. 지수는 이 사업을 '고객을 보호하는 경호업'이라고 칭하며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넌 잘못되었어!'라고 정확히 방향을 짚어주는 사람이 없고, 상황이 악화되기만 한다는 것이 키 포인트입니다. 

요즘 작품들이 그렇듯이 꿈처럼 이야기의 연결고리 없이 무의식적 흐름을 화면에 중간중간 연출해서 담아내곤 하는데, 인간 수업에도 이러한 연출로 자기 자신이 몰락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지수를 면밀하게 보여줍니다.

 

이 학생들의 선생님은 누구보다 학생들을 아끼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사각지대'에 숨은 학생들의 진상까지 파악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어른의 세계에서 버려진 어른의 이야기


더 흥미로운 점은, 10대인 지수가 어른을 실장으로 삼고 동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임금을 받으며 움직이는 노동자였습니다. 지수와 정으로 일하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지수와 같이 일하게된 동기는 무엇이었고, 그 와중에 지수를 사장으로 섬긴 이유는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작품에서조차 끝까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소외된 '이실장'을 최민수 님이 제대로 표현해주셨죠.

 

<[인간수업]의 이실장 역, 최민수님>

 

노숙자로 지내던 이 인물을 지수가 고용함으로써 나름 삶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느 순간 이 일로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현실적으로 운영자인 지수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아무런 현실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죠.

이 실장은 극 중에서 이미 성숙한 어른이었고 공감 능력과 의리가 있었기에 성매매 종사자 고객 중 10대였던 아이를 생각해주기도 하고, 지수를 어려운 위기에서 여러 번 구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생에 비해서 허망하게 잊혀버리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두 사이코패스의 만남, 지수와 규리


'지수'와 '규리'는 아주 정반대의 성격과 삶을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지수와 달리, 규리는 말 그대로 '핵인싸'로 모든 학생들이 친해지고 싶은 당찬 학생이죠. 게다가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부모님 아래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완벽해보이는 규리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수업]의 규리 역, 박주현님>

 

규리는 지수의 사업에 매력을 느끼면서 동업을 하자고 설득 설득하는데요, 사실 그 동기를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속박당하는 싫어서 돈을 급히 벌고 나가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지수를 향한 애정이 갑자기.. 생겨서(?) 돈보다 먼저 지수를 전적으로 보호합니다.  그리고 이 학생은 자신 인생이 꼬였다는 걸 알고 평생 어렵게 대했던 부모의 돈을 바로 삥땅 쳐서 외국으로 튀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행동 전개가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지수를 더 큰 사업(=범죄)으로 끌어올리게 되는 중심인물입니다. 초반에 지수와 규리와의 애매한 이 관계에 대한 내용이 좀 길어서 쳐진다는 평도 있었으나 후반 빠른 전개와 다양한 혼란의 등장으로 원만하게 시청을 지속하는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지수는 규리를 만나는 순간마다 인생의 큰 그래프가 뒤집힙니다. 아빠에게 돈을 빼앗기거나, 조폭에게 휘말리거나 등등 지금까지 수월하게 사업을 시작한 것에 비해 많은 변화가 생기는데요, 그때마다 규리를 탓하지만 서로 애증의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결국 혼란 속으로 함께 빠져버리게 됩니다. 학교에서 그 누구보다 잘 나갔던 이 둘은 절대 이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게 됩니다. 

 

 

얕은 느낀 점


지수는 순진하고 겁 많은 사내아이에서 어느 순간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로 변질되어버린다는 극단적인 내용이 인상 깊더군요. 드라마에서 청소년에게 희망적인 메시지 하나 던지지 않고 '와..ㅈ됐다..'만 외치는 등장인물들만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B급의 스토리 전개는 아닙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연출에 있어서 몰입도가 상당한 작품으로 국내 Netflix 오리지널에서도 꽤 색이 강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직 이후 시즌의 기대가 있으므로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이 있죠. 

 

루머의 루머의 루머보다 더 잘 볼 수 있었던 점은?

주인공은 가해자나 피해자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없고, 앞에 있는 문제들을 급히 피하려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왕따와 학교 폭력이 내용의 주가 되지 않고 '한 청소년이 불법 범죄를 저질렀는데 인생 개씹 똥망'한 내용이 일단 중심이므로 심리적인 공감을 요구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고 나서 너무 우울해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영상 마지막에는 주변에 어려운 학생이 있거나, 경험한 사람은 1377로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뜨는데요, 여기서 연락이 필요한 사람은 학폭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자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판단이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청소년이므로 잘못에 대한 어른들의 냉철한 이해와 책임이 필요하기도 하겠죠.

 

결론적으로, 제목이 이야기하는 '인간 수업'은 말 그대로 인간이 하는 실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를 몸소 배우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누구나 잘못은 하지만, 그다음 자신이 인간이 될지 안될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요. 청소년은 어른보다 그러한 위험에 대해 노출되어있고 누구나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굳게 지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무겁게 논쟁하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